휘 흠지공 일화 시 한수
東萊鄭氏 諱 鄭欽之 公의 逸話와 詩 한 首 綺羅星 같이 많은 人物을 輩出한 東萊鄭氏임을 자랑하면서.... 누가 我東萊鄭氏를 한마디로 定義한다면 “六孫五蘭”이라 했던가? 풀이하면 六世校書郞公 諱 輔의 八世孫인 동래정씨十四世諱 甲孫.麟孫.興孫.昌孫.喜孫(喜霖)陸孫의 六孫과 五蘭은 六世詹事公 諱 弼의 八世孫인 東萊鄭氏 十四 諱 蘭孫.蘭秀.蘭宗.蘭元.蘭茂의 五蘭을 말함이다. 文景公 諱 欽之는 위 六孫의 考이며 我東萊鄭門의 相臣十七人中 첫효시(嚆矢)로 領相인 忠貞公 諱 昌孫을 낳으셨고 또한 左相인 恭肅公 諱 佸의 祖考이시다.世宗 임금의 最側近에서 都承旨까지 五年余 世宗大王을 보필한 後 世宗十二年(1430年)大司憲이 되어 국가 초창기의 질서를 바로잡고 국가 기강 확립에 힘썼으며.다음 逸話는 그때 文景公의 충성어린 거침없는 直言의 逸話이다.世宗大王은 重臣들을 모아놓고 江原道 鐵原 땅에서 武藝를 訓練시킬 때 鳥類(새)를 많이 잡는 者에게 벼슬자리를 줌으로써 施賞(시상)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는 의견을 제시한바 있었다.重臣들은 한결같이”성은이 망극하여이다.그것은 실로 묘안인 줄 아뢰오“하며 극구 찬양했다그러나 정흠지 대사헌은 ”전하 대사헌 정흠지 아뢰겠나이다.만약 새를 많이 잡는 자에게 벼슬을 내리신다면 실전에서 전공을 세우는 자에게는 무엇으로 시상하시겠나이까?이 점 통촉하시옵소서.“라며 반대의견을 개진했다.重臣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世宗大王은 없던 일로 하자며 대사헌의 의견을 채택했다 이처럼 대쪽같은 성격의 諱 欽之 밑에서 자라난 아들 六兄弟는 성품이 강인하고 청렴한 生活로 일관했다.特히 三父子大司憲(諱 欽之,長男,甲孫,四男,昌孫)輩出은 朝鮮朝에서 唯一無二하며 歷史에 길이 빛날 일이다 아래詩는 文景公 諱 欽之께서 大司憲을 거쳐 形曹判書로 四年余(世宗13年-17年)最善을 다하여 國事에 畵力中 北方咸吉道의 收復을 爲하여 世宗 임금으로부터 咸吉道觀察使의 重任을 맡은 世宗 十七年(1435年)咸興監營에서 出發 그 험준한 후치령과 대덕령 등 수많은 준령을 넘어 당시 軍事要衝地인 甲山까지 初度巡視次 가셔서 甲山客舍에서 남긴詩로 有名하다.至今부터 570余年前 風俗을 보는 듯하여 감회가 깊다. 綠水靑山畿萬重=맑은 물 푸른산 몇 만겹이더냐 雪煙掩 有無中 =구름과 연기 가리고 서리어 있는 듯 없는 듯 한 속이네 居民但自知耕 =백성들 다만 스스로 밭갈고 우물 파는 것만 알아서 淳朴依然太古風=그 순박함은 의구하여 태고적 풍속일세 위와 같은 上言文을 올렸더니 世宗임금께서 이제야 北方 근심은 안해도 되겠다 하면서 滿足해 하였다함 筆者 文景公의 十九代孫 鄭 弼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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