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중소식
작성자 종중회
작성일 2013-10-04 (금)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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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현 선영의 약사(略史)

■.蜂峴先塋의 略史

[所在地/現在]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산 99.

  
現在의 蜂峴先塋의 府尹公(12世/諱 符) 祖考妣 내외분, 文景公(13世/諱 欽之) 祖考妣 내외분, 貞節公(14世/諱 甲孫) 祖考妣 내외분, 監察公(14世/諱 喜孫) 祖考妣 내외분 여덟분의 墳墓는 原來 豊壤直洞(現在의 光陵자리/世祖와 貞熹王后의 陵)에 있었으나 光陵이 造成됨에 따라 睿宗 卽位年(1468) 10月에 現在의 先塋으로 遷葬되었다.
※移葬할 때가 겨울철인데 冬眠中인 벌떼(蜂群)가 나와 運柩行列을 따라오다가 지금 墓를 쓴 자리에서 벌떼가 모두 멈춰 내렸는데 상지관(相地官)¹)에게 地勢를 살피게 한 즉, 과시 明堂인지라 벌떼가 멈춘 자리에 墓坐를 擇占 하였으므로 이때로부터 마을 이름을 벌이 넘어 왔다하여 『蜂峴』이고 一名 『벌우개』라고 부르게 된 것은 有名한 逸話이다.
〔朝鮮王朝實錄의 記錄 參照〕
.睿宗 1卷, 卽位年(1468 戊子 / 明 성화(成化) 4年) 10月 1日(丁亥) 2번째기사
종친과 재추에게 정흠지(鄭欽之)의 묘자리가 능침에 적당한가를 아뢰게 하다
.睿宗 1卷, 卽位年(1468 戊子 / 明 성화(成化) 4年) 10月 4日(庚寅) 2번째기사
이장하는 정창손과 유균에게 관·곽 및 묘를 만드는 군인을 내려주게 하다
○傳旨戶曹曰: “蓬原君 鄭昌孫, 遷祖父母、父母及同生墳; 行護軍柳均, 遷父母、妻子墳。 其賜昌孫棺槨各八、油芚八部、紙一卷、米豆竝一百石; 均棺槨各六、油芚六部、米豆竝四十石、紙五十卷。” 又令承政院馳書于京畿觀察使, 抄給造墓軍人, 昌孫五十名, 均三十名。
¹).상지관(相地官) : 조선시대 관상감(觀象監)에 소속된 풍수(風水)전문가이며 정원은 7명이다.
 
●. 漢城府尹公(12世/諱 符)
高麗 恭愍王 在位初(1353~1355?)∼1412(太宗 12).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아버지는 감찰사감찰대부(監察司監察大夫) 양생(良生)이다
1383년(우왕 9)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 1399년(定宗 1) 형조전서(刑曹典書), 1401년(太宗 1) 경기도관찰사, 다음해부터 1403년까지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404년 다시 형조전서(刑曹典書)에 제수되었으며, 1408년에는 공안부윤(恭安府尹)으로 태상왕(太上王:太祖)의 죽음을 알리고 시호를 청하는 고부청시사(告訃請諡使) 정탁(鄭擢)과 함께 부사(副使)가 되어 명나라를 다녀왔다. 귀국과 함께 한성부윤에 개수(改授)되었다. 特히 公은 용모(容貌)가 웅위(雄偉)하고 淸儉正直함이 父兄의 風度를 지녔다 했었고 용재총화(慵齋叢話)에 이르기를 公은 風流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特히 거문고를 잘 탔다고 한다. 또한 仲兄 雪壑齋公(諱 矩)과 함께 妹婿 安從約의 집안에 妖鬼를 물리친 일들은 公의 正氣를 能히 斟酌하고도 남음이 있다(慵齋 成俔은 安從約의 外孫임).
 

●. 文景公(13世/諱 欽之)

1378(우왕 4)∼1439(세종 2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요좌(堯佐). 호(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고려 감찰대부(監察大夫) 양생(良生)이고, 아버지는 부(符)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삼사좌사 고성군(固城君) 충정공(忠貞公) 희필(希泌)의 따님이시다.

진사성균시에 합격한 뒤 음사(蔭仕)로 벼슬이 지평에 이르렀다.

1408년(태종 8) 좌정승 하륜(河崙)을 탄핵하다가 먼 곳에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와 141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조정랑·병조정랑·좌헌납을 거쳐 1416년 장령이 되었다. 이 때 좌의정 박은(朴誾)이 정탁(鄭擢)과 노비문제로 송사를 일으키자, 박은을 탄핵하다 미움을 받아 배척당하여 4년 동안이나 등용되지 못하였다.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봉상시소윤(奉常寺少尹)이 되고, 이어 집의·지형조사(知刑曹事)·대언(代言)을 거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기밀(機密)을 관장하였다. 그 뒤 이조참판·대사헌(大司憲)을 거쳐 형조판서에 오르고, 충청·전라·경상 3도의 도순무사가 되어 연해(沿海)의 주군(州郡)의 성터를 심정(審定)하였다.

1435년(세종 17) 咸吉道 都觀察使가 되어서는 새로 설치한 회령 등 4진(鎭)의 수비에 공헌하고, 어머니의 병환으로 돌아와 중추원사가 되었으며, 사람됨이 풍채가 좋고 밖으로는 유화하나 내심은 강직하였으며, 독서를 좋아하였는데, 특히 『사기(史記)』·『한서(漢書)』를 잘 외었다. 일찍이 황보인(皇甫仁)과 함께 『진설(陣說)』을 지어 올렸고, 천문에도 밝아 세종의 명으로 역법(曆法)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學勤好問文 布義行剛景).

 

●. 貞節公(14世/諱 甲孫)

1396(太祖 5)∼1451(文宗 1).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인중(仁仲). 양생(良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符)이고, 아버지는 중추원사 흠지(欽之)이며, 어머니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전주최씨(全州崔氏)로 형조판서(刑曹判書) 병례(丙禮)의 따님이시다. 公은 六兄弟(六孫) 중 長男으로 태여 났으며,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동진사(丙科)로 급제한 뒤 부정자·감찰·병조좌랑·헌납·지평 등을 두루 거쳐 지승문원사가 되었다. 1435년(세종 17)에 강직한 성격을 인정받아 좌승지로 발탁되고 지형조사(知刑曹事)·예조참판을 거쳐 1438년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 1441년 大司憲으로 이도(吏道)를 바로잡아 더욱 세종의 신임을 받았다. 特히 文宗1年(1451/辛未)에는 아우 忠貞公 창손(昌孫)도 大司憲에 올라 三父子 大司憲이 되니 이는 조선조 500年史에 유일무이(唯一無二)하다. 그 뒤 경기도와 함경도의 관찰사, 중추원사·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한 뒤 우참찬을 거쳐 1450년(문종 즉위년) 좌참찬이 되어, 판이조사(判吏曹事)를 겸하였다. 그는 청렴하기로 널리 알려져 중종 때 아우 忠貞公 창손(昌孫)과 함께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 되었다. 시호는 정절(貞節)이다(直道不撓貞 好廉自克節).

1980년 내무부 지방행정연수원 발행 『공직자를 위한 명언록(名言錄)』에 조선조 500년 역사에 기록된 215명의 청백리(淸白吏)중 公도 황희(黃喜), 맹사성(孟思誠) 박팽년(朴彭年)등과 함께 8청(八淸)에 선발되어 오늘날도 공직자들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으며, 한국방송공사(韓國放送公社/KBS)에서는 2013년 6월 30일부터 2013년 7월 6일까지 公의 함길도 관찰사 재임 시의 일화(逸話)를 소재로 한 한국(韓國)의 유산(遺産) 183회 『아들의 이름을 지운 정절공 鄭甲孫』편이 방영(放映) 되었다.

  

                                                            東萊鄭氏文景公派宗中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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