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유생정동장(鄭東章)등의 상소문(上疏文)

□.肅宗 59卷, 43年(1717 丁酉 / 청 강희(康熙) 56年) 3月 9日(甲子) 3번째기사

충청도 유생 정동장의 속오군 군포 폐단 등에 관한 상소문.

○忠淸道儒生鄭東章等上疏, 陳六條: 其一, 請蕩減流亡積逋, 以紓隣族侵徵之急。 其二, 請各衙門、諸宮家折受處, 使各邑, 量宜收稅直送, 以革差人浸漁之弊。 其三, 請申明束伍軍給復免役之規, 使盡練習之方。 其四, 請嚴禁徵布時兵吏受賂之弊。 其五, 請道內忠臣、孝子、烈婦、義人、竝賜褒崇。 其六, 請伸理道內冤獄。 疏末又言, 李翔, 早年志學, 至勤累朝之旌招, 不幸爲逞憾之人, 乘機構陷, 終至於瘐死獄中, 尙忍言哉? 先正臣宋時烈與人書尺中, 至以翔之當初一疏, 請出於嫉惡正俗, 此可謂百世之正論, 而故相臣柳尙運, 嘗於筵中, 以財利之謗, 萬萬冤痛爲對, 此實一道公共之論也。 伏乞聖明, 特命伸雪, 以終禮過之恩, 上命廟堂稟處。

충청도의 유생(儒生) 정동장(鄭東章) 등이 상소하여 여섯 조목을 아뢰었는데, 첫째 유망(流亡)한 자의 적체된 포흠(逋欠)을 탕감해서 인족(隣族)을 침학(侵虐)하여 징수하는 것을 늦추기를 청한 것이고, 둘째 각 아문(衙門)과 여러 궁가(宮家)에서 절수(折受)註1) 한 곳은 각 고을로 하여금 적당히 세를 거두어 곧바로 보내게 하여 차인(差人)이 침탈하는 폐단을 없애기를 청한 것이고, 세째 속오군(束伍軍)註2)에게 급복(給復)註3) 하고 면역(免役)하는 규례를 거듭 밝혀서 연습하는 방도를 다하게 하기를 청한 것이고,네째 군포(軍布)를 거둘 때에 병리(兵吏)가 뇌물을 받는 폐단을 엄금하기를 청한 것이고, 다섯째 도내(道內)의 충신·효자·열부(烈婦)·의인(義人)에게 모두 포숭(褒崇)을 내리기를 청한 것이고, 여섯째 도내의 억울한 옥사(獄事)를 신리(伸理)하기를 청한 것이었다. 소 끝에 또 말하기를, 이상(李翔)은 일찍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므로, 여러 조정에서 성의를 다하여 정초(旌招)하기까지 하였으나, 불행히 원한을 갚으려는 사람이 시기를 틈타 구함(構陷)하였으므로, 마침내 옥중에서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오히려 차마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선정신(先正臣) 송시열(宋時烈)이 남에게 보낸 글월 가운데에 이상이 당초에 상소한 것은 못된 일을 미워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려는 데에서 나왔다고까지 하였는데, 이것은 백세(百世)의 정론(正論)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故) 상신(相臣) 유상운(柳尙運)이 일찍이 연중(筵中)에서 재리(財利)를 탐한다는 비방은 아주 원통한 것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이것은 진실로 한 도 내의 공론입니다. 바라건대, 성명(聖明)께서는 특별히 신설(伸雪)하도록 명하여 끝내 예우하는 은혜를 베푸소서.” 하였는데, 임금이 묘당(廟堂)에 명하여 품처(稟處)하게 하였다.

[註1]절수(折受) : 임금에게 자기 몫으로 땅이나 결세(結稅)를 떼어 받음. ☞
[註2]속오군 [束伍軍] : 조선 후기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편성한 지방 군대.
조선 후기 속오법(束伍法)에 따라 편성한 지방 군대이다. 1594년(선조 27) 임진왜란 때 군역을 지지 않은 양인(良人)과 양반을 골라서 조직한 군대로 평시에는 군포를 바치게 하고 유사시에 군역을 치르게 하였다. 조선 후기 양인과 공사 천인으로 조직된 혼성군.
[註3]급복(給復) : 나라에 공(功)이 있는 사람이나 열녀(烈女)·효자(孝子) 등에게 부역을 면제하는 특권을 주던 것. ☞
○이상 [李翔, 1620~1690] : 본관 우봉(牛峯). 자 운거(雲擧)·숙우(叔羽). 호 타우(打寓). 시호 문목(文穆). 송시열(宋時烈)을 통해 김집(金集)의 학문을 이어받았다. 1658년(효종 9) 산림들이 진출할 때 박세채(朴世采)·윤증(尹拯)과 함께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자의(諮議)·진선(眞善)에 임명되었다.
1661년(현종 2) 이후로 사헌부의 여러 관직에 임명되었고, 1681년(숙종 7) 이후 사업(司業)·형조참의·우윤·대사헌·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학문적 정치적으로 송시열을 충실히 따랐다. 현종 말년의 예송(禮訟)에서는 남인인 허적(許積)을 탄핵하다가 실세하고, 1680년의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재기하였다. 노론 ·소론이 분기될 때도 송시열을 따라 소론의 남인 등용론에 반대하였다.
1688년 재산을 탐내어 먼 친척을 모함했다는 혐의로 처벌받았으며, 서인이 실세한 기사환국(己巳換局) 뒤 옥사하였다. 1717년에 복관되었고, 이조판서를 추증받았다. 충남 전의(全義)의 뇌암서원(雷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출처] 이상 [李翔 ] | 네이버 백과사전
○유상운 [柳尙運, 1636~1707] :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서인이 분당되자 소론에 속하였으며,1701년 무고(巫蠱)의 옥사가 일어나 장희빈까지 연루되자 세자의 생모를 사사(賜死)할 수 없다고 주장하다가 파직되었다. 1702년 직산에 유배되었다가 1705년 중추부행판사로 복직되었다.

本人-鄭東章(24世)

부(父)

 

字성문(聖文)

성명 : 정덕우(鄭德友)

 

生年 갑자(甲子) 1684년

품계 : 통덕랑(通德郞)

肅宗10年(甲子/1684)

合格年齡 28세

 

 

本貫 동래(東萊)

 

 

居住地 온양(溫陽)

 

 

 

 

 

[생원진사시] 숙종(肅宗) 37년 (1711)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3등(三等) 37위

http://people.aks.ac.kr(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司馬榜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