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선집 서거정(徐居正)
서거정 徐居正(한국,1420-1488)
서거정은(徐居正)은 세종 2년에 태어나 69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조성조 최고의 문장가요 학자 엿다. 자는 강중(剛中) 또는 자원(子元)이며,호는 사가정(四街亭) 혹은 정정정(亭亭亭)으로 불렷다.
못를 지낸 달성 서씨 미성(彌性)의 아들이며,어머니는 권근(權近)의 딸이다.세종20년에 생원,진사 양과에 합격하고,세종 26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그의 학문은 폭이 넓어 천문 지리 의약 점성술 풍수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수양대군을 따라 명나라에 종사관으로 다녀왔고,세조가 즉위하자 세자 사부로 보임될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사은사로 중국에 갔을대 그의 문장을 대륙에까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엇고, 국가의 전책(典冊)과 사영(詞命)이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성종 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졌다,
조선시대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찬수에 깊이 관여하였고,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동문선(東文選)》,《동국통감(東國通鑑)》,《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등의 편찬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예문관 대제학과 성균관 지사를 오래도록 겸하면서 문형(文衡)을 맡았는데,45년간의 관직생활 동안 절반이나 문형을 관장할 정도였다,아울러 전후 23 차례에 걸친 과거 시험을 관장하여 수많은 인재를 그의 손으로 뽑았다.학품과 사상은 조선 초기 관학의 분위기를 대변하였고,정치적으로는 훈구대신 입장을 견지하기도 했지만,여러 전적들을 편찬할 때는 신진 사림계의 인물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그가 주측이 되어 편찬한 사서,지리지,문학서 등이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문집《사가집(四佳集)》이 이 세상에 전한다.
대구 구암서원(龜巖書院)에 배양되었다.
 
서거정은 당대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우리나라 사적(事跡)을 널리 채집하여,역대 창업으로부터 공경대부들의 도덕과 언행,문장과 정사들 중에서 모범이 될 만한 것을 가려 뽑고,또 국가의 전고(典故)와 떠도는 여항풍속(閭巷風俗)중에서 사회 교육과 관련된 사례는 물론이고,나라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까지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간결한 필체로 기술하였느데,그것이 바로《필원잡기》이다.그 제목에서 보듯,붓 가는 대로 주위에 널려 있는 이러저런 사실들을 모아 기록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