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節公의 처부(妻父) 逸老公(江陵金揚南)의 墓
 
 

所在地 : 京畿道 연천군 전곡읍 고릉리 山77(林)

찿아가는길 : 고릉리요지1에서 고릉리요지2 방향으로 400m 가다가 군부대가 있는 좌측계곡을 따라 850m 가면 해발 77m정도에 위치한다.

봉분은 호석을 두른 방형이며 규모는 직경 440cm이고 높이 170cm이다.

봉분 전면에는 상부를 花冠형태로 장식한 墓碑와 상석이 있고 2단의 계체석 좌·우로 문인석 4기가 있다.

묘비는 全面에 비문이 새겨져 있는데 前面에는 「朝鮮徵士逸老金先生諱揚南之墓」라 쓰여 있고, 비문은 10대손 경기도관찰사 尙翼이 글씨를 썼고, 병조판서 尙星이 지었다.

건립연대는 1753년(영조 29) 3월이다.

金揚南(생몰년 미상)의 호는 逸老亭이며 본관은 강릉(江陵)이다.

고려 말 공조판서를 역임한 錘의 아들로 태어나 1382년(우왕8) 문과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고 특히 함께 등과한 이방원(李芳遠)과 교우가 두터웠다.

고려가 망하자 전곡읍 은대3리 반곡에 은일하며 매일같이 한탄강 건너에 있는 산에 올라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을 향해 통곡하며 재배하였고 집 근처에 초정(草亭)인 학소정(鶴巢亭)을 짓고 산수와 더불어 평생을 옛 高麗臣下로서 절의를 지키다 일생을 마쳤다.

태종이 그의 인품에 감동하여 지평을 제수하는 등 여러 번 불렀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現在 高麗 末 五忠臣을 모시는 議政府 송산사(松山祠)에 배향(配享)되어 있다.

■ 漣川文化院, 『鄕土史料集』, 1995

■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연천군의 역사와 문화유적』, 2000

출처 : 연천군선사문화관리사업소(http://seons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