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공 휘 흠지 명신록
문경공(文景公) 휘 흠지(欽之) 명신록(名臣錄)
1439(기미. 세종21)년 6월 기묘삭(己卯朔) 14일 임진에 중추원사(정2품) 정 흠지가 세상을 떴다.
흠지의 자는 요좌(堯佐)로서 경상도 동래현 사람이며 고려 감찰대부(정3품) 양생(良生)의 손자이다.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차츰 자라면서 책을 읽을 줄 알게 되어 진사와 성균시에 합격하였다. 음관(부모의 덕으로 한 벼슬)으로 사헌부 지평(持平: 사헌부의 정5품)에 이르렀다. 법을 집행하면서 아첨하지를 않아 좌정승 하륜(河崙)을 탄핵하여 드디어 먼 곳으로 귀양보냈다.
1411(신묘. 태종11)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이조 ․ 병조 정랑(정5품), 사간원 좌헌납(정5품)을 거쳐 1416(병신. 태종16)년에 사헌부 장령(정4품)이 되었다. 그 때 좌의정 박 은(朴訔)이 청성부원군 정 탁(鄭擢)과 노비 문제로 다투다가 마침내 관청에 소송하게 되었는데, 박 은이 조정에 들어가 임금께 스스로 이 일을 관청에 소송함이 옳지 않다고 아뢰었다. 흠지 공이 탄핵하라고 상소하니, 상소문의 글이 매우 적절하여, 공론이 이를 상쾌히 여기었건만 얼마 있어서 파직되니, 박 은의 꺼리는 바가 되어 4년 동안 쓰이지 않았다.
세종이 즉위하자 봉상시(奉常寺 : 제향과 시호를 맡아보던 관청) 소윤(少尹 종4품)으로 기용되어 집의와 형조지사 · 대언(代言 : 왕명을 출납하던 벼슬)을 거쳐 지신사(知申事 : 밀직사의 정3품직)로 올라 기밀관계에 참여 ․ 관장하여 성의껏 아뢰는 바가 많았다.
세종이 일찍이 철원군에서 무예를 연습할 때, 짐승을 많이 잡은 자에게 벼슬로서 상을 주려고 하여 호종대신들에게 의논케 하니 모두가 가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흠지 공이 홀로 아뢰기를 “이제 짐승을 많이 잡은 자에게 벼슬을 주면, 나중에 전공이 있는 자가 있으면 장차 무엇으로 상을 주시려고 하시나이까.” 하니 왕도 “그렇겠구나!” 동의하시고 드디어 그 의논을 그만두셨다. 후에 이조참판, 사헌부 대사헌이 되고 형조판서로 오른 다음 충청 ․ 전라 ․ 경상 3도 도순무사(都巡撫使 :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과 전시 군무를 맡은 임시직 순무사의우두머리)가 되어 연해주 고을의 성터를 살펴 정하고, 1435(을묘. 세종17)년에 나라에서 함길도(함경도)에 회령 등 4진(鎭)을 신설하여 군무와 민사 일처리가 아주 많을 때에, 세종께서 흠지 공을 관찰사로 임명코자하여 정부에서 의논케 하였더니, 모두 흠지 공에게 80이 넘은 노모가 계셔서 먼 곳으로 보내는 것이 불가하다고 아뢰니, 세종께서 “나이든 어른을 모시는 것은 한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요, 변방을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니 이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고 하여 드디어 파견하기로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정 흠지를 관찰사로, 김 종서를 도절제사(본이름 兵馬節制使. 區鎭의 정3품 벼슬)로 보내면, 나는 북방에 대한 근심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그리고 흠지 공에게 올 해에 와서 어머님께 문안드리고 내년에 다시 와서 어머님을 뵈오라 하시며, 특히 술과 고기, 악대를 내리시어 나이 드신 어머님을 위하여 후하게 베푸시고 오가게 하였다. 이윽고 어머님 병환이 심하매 불러들여 중추원사를 시키시고, 다음해 어머님께서 돌아가시자 병에 걸리니, 상감께서 내관을 보내시어 고기를 권하고, 어의(御醫 : 대궐 안의 의사) 두 사람이 곁에서 떠나지 않고 진찰하도록 명하시고 경과를 끊임없이 물으시고 여러 차례 대관이 귀한 음식을 가지고 가도록 베푸시었다. 예순둘에 돌아가심에 상감께서 애도하여 이틀 동안 조회를 철폐하고, 사자를 보내어 조문하고 부의를 내리고 특별히 문경(文景)이라는 시호를 내리었다.
부지런히 배우고 모르는 것을 묻기 좋아하여 (곧 학구적이라) 문(文)이요, 의를 실천하고 행실은 굳세다는 뜻으로 경(景)이라, 사람됨이 수려하고 겉으로는 온화하나 안으로는 굳세어, 바라보아 근엄하며, 평소에 책읽기를 좋아하고 중국역사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세종께서 윤회(尹淮)더러 “정 흠지가 언제 이와 같이 역사에 밝았는고!” 말씀하셨다. 또 집안 재산에는 힘쓰지 않고 벼슬을 하면 대체를 따라 일처리하기를 힘썼으며, 남과 달리 특별난 척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죽음이 가까워오자 유서를 써서 자손들에게 불사(佛事 : 불교 관계 일)에 힘쓰지 말라고 타일렀다.

3) 함길도(함경도) 북방 대책 책문을 올리다.

함길도 감사 정 흠지에게 명한다.
근래 야인(여진족)이 해마다 국경지대를 침범하는데, 혹 말하기를 만주사람이 홀라온(忽刺溫)에게 함께 쳐들어가기로 청병하였다고 하는데, 만주사람이 말하기로는 “홀라온이 변경에 쳐들어 온 것이지 자기들과는 관계가 없다. 우리 파저강(婆猪江) 사람도 역시 노략질을 당했다.”하니, 변경을 침범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 도에 사는 오량하(吾良哈) 알도리(幹朶里) 올적하(兀狄哈) 등은 홀라온과 내통하는 자가 응당 많을 것이니 도절제사 김 종서(金宗瑞: 1390-1453. 字 國卿 号 節齋. 본관 順天: 都摠制 錘의 아들 1453. 수양대군에게 처죽임을 당함)에게 기회를 보아 물어서 실상을 알아보라고 했더니 이제 종서가 다음과 같이 상계하였다.

“알도리 태수 올량하·복아한(卜兒罕) 등이 말하기를 홀라온·올적하·사롱하(沙弄哈)·내이거(乃伊巨)·모도호(毛都好) 등이 5월에 군마 500명을 이끌고 파저강에 나왔는데, 사롱하는 여연(閭延)에 쳐들어오고 내이거와 모도호는 만주사람들의 거처를 약탈하였다고 하여 두 사람의 말이 입이 달라도 같은 말이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야인과 만주 및 그 영(營) 아래 사람들은 혹 친척으로, 혹은 결혼으로 맺어져 있어서, 선과 악을 같이하므로 그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옛날에 적과 상대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의 정상과 허실, 도로의 굽은 것과 곧은 것, 지세의 험준함과 평탄함을 반드시 알아 가지고 우리 쪽 계략을 세우는 사람이 첩자를 선용하는 것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롱하·내이거·모도호 등은 한가지인데, 거사를 할 때에는 2군(二軍)으로 나누어, 혹은 우리나라 변두리를 침범하고 혹은 만주를 침범하니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니, 만주가 우리에게 유감이 있어서 홀라온에게 군대를 청한 이유를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속으로는 설사 한 마음이나 겉으로는 서로 원수가 된 듯이 하오나, 적은 그 속마음을 감추고 있어서, 드러내지 않으니 또한 알아내야만 할 것입니다.
인라온(忍刺溫)의 거처와 산천의 험하고 평탄함, 부락의 많고 적음, 군대의 강약, 허실, 우리나라와의 거리의 멀고 가까움, 도로의 굽은 곳과 곧은 곳을 역시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랑캐의 성질은 탐욕스러워서, 참으로 이(利)를 가지고 꾀하면, 비록 부자(父子) 사이라도 그 마음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만일에 올량하(兀良哈)·알도리와 홀라온 사이에 연줄이 닿는 이가 있으면 후한 선물로써 그 마음을 사거나, 또 우리나라 통사(通事 :역관譯官)가운데에서 신중하고 치밀한 자를 가려, 오랑캐 옷을 입히고 왕래 노자를 넉넉히 주어서 홀라온과 함께 보내어 기한을 정하지 않고 마음대로 왕복하게 하여 오랑캐의 실정을 탐지케 하기를 수년을 하면 오랑캐의 실정을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종서의 이 계책은 참으로 좋다. 이제 정부와 대신들에게 논의케 하라.”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올량하와 알도리 중에 홀라온과 연줄이 있는 자를 찾아내기란 진실로 어려우며, 비록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또 통사를 파견하였다가 만일에 실수하여 탄로가 나면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위험한 계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도 말하였다. “예부터 적정을 알고자 하면 반드시 첩자를 써야하는데, 첩자가 비록 곧 바로 홀라온에게 닿지 않더라도, 일에 따라 연이어서 만주에 가서 침타나(沈吒納)·노림하라(奴林哈刺) 등에게서 남몰래 물자로서 그 관하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면 그들이 반드시 말을 다 할 것이오, 세 곳의 말을 다 들어서 살펴보면 그 실정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또 이렇게도 말하였다. “변방을 지키는 일은 비록 갖추어있더라도 상대방 사람들의 허실을 알지 못하면 장님과 귀머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모름지기 적국의 간첩을 역이용하여 그 계획을 속히 진행시켜야 합니다. 그러하오나 본국 역관이 모두 사리를 깨닫지 못하여 함께 일을 꾀할 자가 적습니다. 만일에 실수하여 탄로 나면 장차 어떻게 할 것입니까? 홀라온과 파저강 야인 중에서 서로 친한 자와 서로 좋아하는 자로서 함께 일을 꾸밀 만 한 자를 골라서, 처자를 넉넉히 돌보아 주고 물자를 후하게 주어 파견하여, 저들의 많고 적음과 허실을 살피게 하고, 적들이 오는 시기를 보고케 하여 과연 말하는 대로라면 후하게 그 공에 상을 주면, 야인들이 다투어 반간이 되려들 것이니, 저들의 계책을 거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의논이 분분하여 그 요점을 알 수 없다. 나는 생각하건대 만주인이 빈번히 해마다 쳐들어와,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사로잡아가니 마땅히 죄목을 낱낱이 들어 호되게 나무라야하나 마침 흉년이 들어, 여러 사람을 동원하기가 마땅치 않아서 우선 내버려두고 눈여겨보지 않고 있으나, 비록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자고로 군사를 거느리고 적과 맞설 때에는 반드시 첩자를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적의 실정을 알 수 없어서,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가 없다. 만주인이 변경을 자주 침범하면서 홀라온의 소행이라 핑계대나 우리나라는 그 실정을 몰라서 마치 술수에 빠진듯하니, 어느 누구가 우리나라에 지략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겠는가? 반드시 종서가 말한 대로 된 다음에야 수비나 정벌에 있어서 그 계책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통역관 가운데 조심스럽고 치밀한 자가 적으니, 왕숭(王嵩)이 원호(元昊)에게 파견되었다가 붙잡혀 매를 몹시 맞아 거의 죽게 되었건만도 마침내 그 말을 바꾸지 않고 탈출하듯 할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저 홀라온은 혹시 구류되어있는 자가 많은데 엄하게 다스리면 반드시 간첩의 실정을 토해내어 변경 계략을 누설할 것이니, 저 홀라온 수천의 무리는 장차 시끄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중국(明)에서도 이 일을 들으면 반드시 비웃을 것이다.
옛날 장군은 적을 이용하여 적의 정세를 아는 수가 많았다. 여러 역사책을 상고하면 밝게 살필만하다. 저 야인은 의리를 알지 못하고, 본성이 본디 재물을 탐내어 홀라온과 파저강 접경지역 야인 중에 연줄 있는 자를 골라 포목과 비단, 곡식과 소금의 미끼를 후하게 주어 꾀고, 처자를 보살피면서 사사로이 왕래하게 하면, 몇 해 지나지 않아 홀라온과 만주의 진위를 다 알게 될 것이다.
만일에 붙잡히더라도 이쪽은 공격 토벌할 형세가 아니며, 저쪽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지난번 종서(金宗瑞)와 그리고 회령부판사 이징옥(李澄玉: ?-1453 知中樞院事 全里의 아들. 癸酉정난으로 김종서의 심복이라 하여 파직됨. 김종서의 격살에 분개, 朴好問을 죽이고 大金皇帝라 자칭하고 女眞의 후원을 약속 받고, 兵力을 이끌고 南下 鍾城에 이르자 종성판관 鄭種·호군 李行儉에게 피살됨) 등을 한 곳에 모아, 가능 여부를 곰곰이 논의케 하였으니 만일에 다른 계책이 있으면 감추지 말고 아울러 보고하라.
흠지(欽之), 종서, 징옥 등이 모두 의논하여 다음과 같이 급히 보고하였다.

“훌륭한 장수라고 일컬어지는 자는 다른 게 아니라 첩자를 잘 써서 적의 정세를 잘 알고 엄하게 호령하여 우리 계책을 숨겨야합니다. 먼저 아는 자는 이기고, 아지 못하는 자가 패하는 것은 고금의 상사입니다. 병법에 또한 말하였습니다. 서로 수년 동안 지키다가 하루의 승리를 다투는 것인데, 봉록 백금을 아끼다가 적의 정세를 아지 못하는 자는 남의 장수가 아니며, 또한 상감마마의 보좌관도 아니며, 싸움에서 전승의 주인공도 아니라는 것이 바로 이것일 뿐이옵니다.
우리나라는 4면이 모두 적의 땅과 이어있고, 동남으로는 큰 바다에 이르니, 스스로 전함을 갖춘다면 왜(倭: 일본)가 오는 것이 걱정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서북접경(西北接境)은 적의 굴혈과 연이었는데 50년이나 막아놓고는 적의 왕래를 금하지 않아서, 도로가 굽고 곧음이며, 산천의 험악함과 평탄함을 밝히 알지 못함이 없으니, 허술한 틈을 몰래 엿보고 있다가, 갑자기 쳐들어와 약탈하지 않은 해가 없건만, 여러 진의 장수들은 적들이 오는 것을 아지 못하니 어찌 제 때에 상황 따라 대처할 수 있겠습니까?
서쪽으로는 압록강으로부터, 동쪽으로는 두만강으로부터 그쪽의 산천의 험악함과 평탄함, 도로의 굽고 곧은 것과 대저 적의 허실을, 비록 오래도록 변방에서 산 장수와 노병들조차도 아직 알고 있는 자가 없는데 더구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이것을 아지 못하고 먼저 알기만을 기다리기 때문에 늘 저 적에게 좌절당하는 것입니다.
이제 급한 걱정거리는 만주보다 더한 게 없으며, 또 말하기를 홀라온과 서로 화살을 보내어, 은밀히 결탁한 자를 살피는 것보다 그 실정을 모두 알아야하니 마땅히 상감마마의 뜻에 따라, 접경에 살고 있는 야인 중에, 홀라온과 파저강 가에 사는 이와 연줄이 닿는 사람들과 가만히 꾀하여 이들에게 넉넉히 이익의 미끼를 주어 꾀고, 그 김에 그 식구들에게 부탁하여 이들이 그 친인척들과 서로 만나고 제 멋대로 왕래하도록 하여, 그 정세를 살펴서 알기를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 아마 두 지방의 형편을 거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면 오직 시국정세와 적절할 뿐만 아니라, 역시 옛날 사람의 첩자를 통하는 뜻과도 부합 되옵기에 신등은 진실로 딴 계책이 없습니다.
또한 야인 가운데에도 홀라온이나 파저강 사는 이와 연줄이 닿는 자가 역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너무 서두르다가는 혹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고, 비록 이루어지더라도 혹시 흔적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흔적이 없어진 뒤에야 첩자를 통한 길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징옥이 이 일을 맡고 종서가 이 계책을 주장하도록 하여 기한을 정하지 않고 기회를 보아 잘 도모하면 계책이 반드시 성공될 것입니다.
대저 일은 첩자보다 은밀한 게 없고, 첩자는 상을 후히 주는 것보다 더한 게 없습니다. 의론은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 재물은 쓰기에 넉넉토록 하는 것입니다. 신등의 얕은 소견은 이에 그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