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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參考資料 : 高麗史(135券), 達成府誌 及 朝鮮王朝實錄.
□ 高麗史(135券) : 1383(辛隅9年) 10月 交州道 安廉使 鄭符가 뜻밖에 길에서 倭賊 100여 騎를 만나 倭賊들이
급히攻擊 함으로 符가 피하여 숲속(林間)으로 들어가매 그를 따르던 이속(吏屬)들은 짐(輜重) 보따리와
印章을 모두 掠奪 當 하였다고 記錄되어 있어 約 30歲 가까이에 交州道 道伯을 지내셨다고 보여 집니다.
□ 達城府誌 : 1393(癸酉)太祖2年에는 慶尙道 安廉使로 옮겨 治積이 있으며 後日 嘉善大夫 漢城府尹에 올랐는데
當時 國家에서 처음으로 漢城에 都邑을 定하여 모든 制度가 初創이기 때문에 百姓들이 不服하는지라 公이
府尹으로서 鎭壓하고 按撫하니 法度의 嚴正함을 두려워하였으며, 死後에 崇政大夫 議政府左贊成兼領 經筵事에 追贈되셨다라고 하였습니다.
□ 慵齋叢話 : 公은 風流를 理解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으며 特히 거문고를 잘 탔다 한다. 또한 妹婿 安從約의
집안에 妖鬼를 물리친 일들은 公의 正氣를 能히 짐작케 한다.(慵齋 成俔은 安從約의 外孫임)
□ 鄭矩 : (1350-1418) 本貫 東萊. 字 仲常. 號 雪壑齋. 諡號 靖節. 1377年(禑王 3) 文科에 及第, 典校副令을 지내고 朝鮮 開國 後 漢城府右尹이 되었다. 1394년 太祖의 命으로 韓理· 曺庶· 權弘· 卞渾 등과 함께 『法華經』 4部를金泥로 썼으며, 1397年 左諫議大夫가 되고 이듬해 校書監判事兼尙瑞少尹을 지냈다. 定宗 때 都承旨·大司憲, 太宗때 藝文館學士를 거쳐 中軍摠制· 參知議政府事·工曹判書·戶曹判書·漢城府判事·鷄林府尹·開城留後 등을 歷任 하였다. 1417年(太宗 17) 議政府參贊으로 聖節使가 되어 明나라에 가서 角宮을 들여왔고, 그 뒤 議政府贊成이 되었으나 風疾로 辭退하였다. 書藝에 能하여 作品으로 『健元陵神道碑-(楊州)』를 남겼다.
[출처] 정구 [鄭矩 ] | 네이버 백과사전
□ 交州道 : 江原道의 舊名이다. |